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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는 것은 뭐랄까, 달마다 하는 월례 행사처럼 되어버렸다. 매달 용돈이 생긴 월초엔 당연하다는 듯 중고 서점으로 간다. 둘러보는 코너는 항상 비슷하다. 국내 문학 수상작 모음 코너, 에세이 코너, (마치 영화과라는 것을 티를 내기 위한 듯한) 영화-미술 코너, 그리고 의외로 요새 타율이 좋은 MD 추천 코너. 그러고 나면 음반 쪽을 돌면서 혹여 레어 음반들이 싸게 나와있지는 않은가 한 번씩 훑고, 나온 지 1년 내의 신간 코너엔 어떤 것들이 있나 대충 둘러보고 다시 문학 코너로 향한다. 매번 비슷한 양상이다. 아주 가끔 어릴 때 읽던 책이 생각나 아동 코너를 둘러볼 때도 있긴 하다만.
단편소설을 읽는 것만큼 간단하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소설집이나, 수상작 모음만 읽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같은 경우는 가격이 엄청 저렴하다. 애초에 신간 자체가 신진 작가들을 응원한다는 의미에서 그리 비싸지 않다. 그래서 중고로 사면 대충 한 권에 4천원도 되지 않는다. 요새 문학 트렌드를 간단하고 명료하게 훑어볼 수 있는데 4천원이면 아주 저렴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2017년도 이후로 웬만하면 매 해 사거나, 적어도 읽으려고 했다. 새내기 시절만 해도 전권을 다 모으고 싶었던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재작년 즈음 저작권 관련하여 논란이 생긴 시점 이후로는 서점에 신간이 보이지 않아 안 찾아본지 꽤 됐고.
김애란과 정이현, 그리고 김영하와 성석제, 혹은 아예 편혜영. 예전엔 이런 작가들의 글을 좋아했다. 근데 다 다른 스타일이라 이게 취향이 맞나 싶은 지경이었다. 내가 느낀 그들의 특징으로 생각해보면 수려한 문장들로 삶의 디테일을 논하는 글이나, 혹은 깊게 배인 시니컬함과 유머를 독특한 문장들로 잘 덮어낸 글이나, 아니면 아예 상상하지 않았던 이미저리를 제시하는 글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근데 이렇게 말해도 다 다른 결이다. 결국 다시 정리하면, 나는 문장의 힘을 믿는 편이었다. 그래서 문장이 내게 꽂히지 않으면 읽지 않았다. 꽂히는 문장의 기준이랄 것은 정확히 설명하기도 모호하다. 심지어 해가 갈 수록 점점 무뎌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말 그대로 직접 읽어봐야 안다. 책을 꺼내 첫 한 페이지만 대충 읽어도 안다. 최선을 다 해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게 꽂히는 문장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하고, 동시에 재밌어야 한다. 그래서 외국 소설은 어느 순간부터 잘 읽지 않았다. 작가의 원문과 얼마나 일치하는 문장들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러 버스를 타면서까지 책을 읽을 시간을 벌려고 했던 시기가 지나고 바빠진 이후로는, 이런저런 핑계로 책을 안 읽게 되었다. 그래서 나를 깨울 정도로 강하게 날아와서 꽂히는 문장은 저들 이후로 한동안 보지 못 했다.
남는 게 시간 뿐인 군대에서 혼자 소설을 읽으면서 취향이 조금 정리됐는데, 그 때 최은영 작가의 문장들에 꽂힌 후로는 쭉 그의 글을 좋아한다. 새내기 때쯤 친구가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를 추천했을 때 난 대충 소설집을 훑곤 이상한 허세 가득한 말투로 그 안에는 알맹이가 없다는 식의 얘기를 해댔었다. 사실 그 친구한테 괜히 삐대고 싶었던 게 크긴 했다. 시간이 흘러 군대에서 <내게 무해한 사람> 을 정독하고 나서 나는 숨이 다 가빠지는 경험을 했다. 너무 좋아서, 관물대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틈날 때마다 꺼내 읽었다. 예전에 그렇게 말했던 것을 엄청나게 후회하고 죄송해한 것은 덤이다. 어디가 좋았나 곰곰 생각해보면, 말해야 하는 것들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작가라는 점이다. 그래서 읽는 입장에서 꼭 필요한 만큼의 여지를 갖게 된다. 그 여지를 오롯이 누릴 수 있어서 생각의 시간들이 즐겁고, 그렇게 생각의 끝에 닿은 감정의 순간은 잔잔하게 벅차다. 그런 글들이었다. 혹은 날이 아무리 추워도 읽고 있노라면 따뜻해지는 글들도 있다. 내겐 김금희 작가의 글이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따뜻할 때 읽으면 조금은 너무 더운 것 아닌가하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조금만 쌀쌀해져도 그 글들이 생각나곤 한다. 그 때 읽은 소설집 제목인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잘 지은 제목같다.
그렇게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산다. 난 가끔 이 행위가 마치 구원같다는 생각도 든다. 서로에 대한 구원. 오늘은 팀 버튼이 그린 그림책인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을 전에 영화 코너에서 본 기억이 있어서 사러 갔다. 찾다가 찾다가 도저히 못 찾겠어서 검색을 해봤더니 웬걸 그 책이 영화도, 소설도 아닌 요리 코너에 꽂혀있었던 거다. 굴을 이용한 레시피 책인 줄 알았을까. 그 꼴을 보자마자 당장 꺼내 결제하곤, 집으로 달려와서 책꽂이에 꽂아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무조건 독서는 나를 구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 구원의 기회는 내가 책을 사고 읽어야만 찾아온다. 그래서 중고 책을 사는 행위는 서로에 대한 재발견이다. 누군가에게 더 이상 가치가 남아있지 않아, 의미가 사라진 채 팔려와선 먼지가 쌓여가는 책을 산다는 것. 그것은 생명력이 사라지는 책들을 다시 의미가 있는 책으로 만들고픈 나의 책에 대한 작은 구원이자 나 스스로에 대한 커다란 구원이다.
근데 살 줄만 알고 읽을 줄 몰라서 큰일이다. 빨리 다 읽어야 할 텐데. 책장에 자리만 부족해지고, 완전 정독한 책은 반도 안 되는 거 같다. 올해는 책을 읽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