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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울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요새는 자주 그렇다. 으레 인터넷에서 우울함을 표현할 때 에두르는 말들을 모아놓은 그런 기분. 묘하게 가라앉고 있다 싶으면 금새 밑바닥이다. 그런데 사실 마음 놓고 나 때문에 울어본 적이 없다. 그런 식으로는 눈물이 통 나오지 않는다. 영화를 보다가는 가끔이지만 벅차서 울기까지도 하는데, 이상하리만치 나 때문에 운 기억이 없다. 서운하게.

분해서, 혹은 아쉬워서, 뭐 그래서 운 기억도 어린 시절 이후론 없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동아리로 영자신문 반을 가서, 6학년 무서운 누나들이 우리에게 기사 한 개를 번역을 통째로 맡기는 바람에 영어라곤 하나도 못 하는 친구를 데리고 머리를 쥐어짜내며 번역을 해낸 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잘 했다고 칭찬을 해주셨는데, 그 누나들이 자기네들이 다 가르쳐줘서 그렇다는 식으로 농담을 했다. 그게 분해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진짜 하나도 안 도와줬으면서. 근데 잠깐 울고 나니 생각보다 엄청 창피했고 딱히 도움이 되는 것도 없었더랬다. 외려 고개를 들어보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측은하게 보거나, 역시 4학년, 어리구나, 뭐 이런 눈으로 보기에 조금은 무섭기까지 했다. 그 때 운 게 너무나도 별로였어서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마음 먹은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에 남 신경은 엄청나게 쓴다. 자존심도 에고도 남을 꺾고 눌러댈 만큼 세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뭔가 강한 척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강한 척을 생각보다 오래 하다보니 어느새 조금 강해졌다. 근데 강하다는 것이 차돌이나 무쇠처럼 단단한 상태를 뜻한다면, 그건 다른 말로 내 스스로에게 무뎌졌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애먼 것들에만 화가 나고 웬만한 것은 견딘다. 남들에겐 내 감정은 말도 못 하고 삭히다가 잊는다. 마치 소금이 물에 녹듯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꾸 소금이 녹아들면 물은 엄청 짜질 텐데 말이다.

내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은 것인지. 조금은 위험하게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고 불안한 것 같기도 하고. 얼마 전엔 술에 취해서 정말 엉뚱한 일에 펑펑 울었다. 작년 겨울 열심히 친구를 도와 만든 영화. 그 영화를 정말 잘 봤다는 누군가의 말에 내 연출작도 아닌데 그게 너무나 좋고 감사해 눈물이 다 났다. 그 영화가 왜 내게도 소중한가 깊게 얘기하는 건 매번 힘든 일이지만, 어떤 치열함이 내게 있었고 그건 어쩌면 여태 좋은 가족 구성원 노릇을 못 했던 나의 사명감과 죄책감이 기원이었다. 당연히 그런 얘길 다 하진 못 했다. 멍청이같이 찔찔 짜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어제 왜 울었더라, 하고 때아닌 후회를 했다. 머리나 가슴 속 어딘가가 망가진 건지 어쩐 건지.

어딘가 불안한 상태로 서있지만서도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자빠지건 넘어지건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사람에게 관심이 엄청 없는 편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다른 사람들을 아낀다. 요새는 그 마음이 점점 커진다.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 앞에선 말투부터 달라지는 게 스스로도 느껴진다. 그 사람들 앞에선 애교도 뭔가 많아지고 그냥 괜히 애틋하고 그런다. 전에는 오래 못 본 누군가를 정말 간만에 만나도, 가슴이 뻐렁치게 두근대며 반가워도 그런 티를 거의 못 냈다. 어, 왔어, 이러고 말았다. 좋은데도 잘 얘기도 못 하고 이상하게 어색해했다. 요새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도 인사도 잘 하고 얘기도 잘 한다. 어딘가 달라졌다. 아무래도 지난 한 해가 많이 아팠어서 그런가보다. 그렇게 아프고, 아물면서 간지럽고 성가시고, 그래서 내려앉은 딱지에 슬슬 짜증을 느낄 정도로 시간이 지나고 나보니 11월이 다 되어있었다. 이제서야 괜찮다.

애늙은이마냥 지내던 내가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나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나의 올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 남은 며칠이 내게는 참 중요한 날들이다. 나는 모든 것이 잘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모두에게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런 내 막연한 바람들이 마치 늦어서 미안하다는 듯, 좀 더 쭈뼛대며 현실로 다가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니까 이딴 뻔한 사진을 얘기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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